여성향 포르노에 대한 고찰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자위할 때 소비하는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아쉽다. 누군가와 무엇이 얼마나 좋은지 뾰족하고 깊숙하게 파고드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말이지. 사실 내 취향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도미넌트(dominant) 남성과 서브미시브(submissive) 여성이 나오는 포르노 소설이다. 그런데도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기 힘든 까닭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텍스트로 야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 적기 때문일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각종 플랫폼에 19금 웹소설이 흔한 것을 보면 여전히 포르노 소설을 향유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다만 그 안에서도 나를 자극하는 텍스트는 소수이며 (수백 편을 읽어도 마음에 드는 한 편 찾기가 어렵다!), 이 소수의 텍스트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취향 공동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를 찾아서 오늘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까? 포스타입이나 기타 플랫폼에 포르노 소설을 올리는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달아서 이 글이 어떤 취향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건지 한눈에 보여준다.
예컨대 등장인물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키워드인 #BL #GL #HL
인물들의 역학 구도를 보여주는 #남공여수 #여공남수
인물들의 행동을 드러내는 #자위 #야노 #쓰리섬 #갱뱅
트리거워닝으로 기능하는 #하드코어 #고수위 #빻취(빻은 취향) #모럴리스(Moral-less) 등등.
이런 해시태그가 취향에 맞는 글을 발견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똑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글도 어떤 글은 전혀 흥분되지 않고, 또 어떤 글은 성적 흥분에 미학적 자극까지 안겨준다. 읽고 나서 흥분되는 글과 입맛만 버렸다 싶은 글은 미세한 차이밖에 없는데, 그 미세한 차이야말로 바로 내 '취향'인 것이다. 이 미세한 차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 대화는 나에게 딱 맞는 포르노 소설만큼이나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 한 작가가 있다. 이제는 사라진 포스타입 운영자 A. 그는 정말이지 내 마음과 욕망을 빤히 읽는 사람 같았다. 과거에 그가 포스타입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땐 한 달에도 여러 편씩 짧은 소설이 올렸는데 어떤 소설도 입맛을 버리게 하지 않았고, 열 편 중 한 편은 아주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의 소설은 매번 동일한 패턴으로 전개된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자와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자가 등장하고, 남자가 사소한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서 여자를 체벌한다. 이게 다다.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복잡한 갈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등장하는 인물도 둘이 전부다. 체벌의 내용은 이마를 콩 쥐어박거나 엉덩이를 때리거나, 다리를 벌리게 해서 성기를 때리는 것이고 다른 방식의 접촉을 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편의 글 중에 한두 편 정도는 삽입 섹스 장면이 나온 적도 있긴 한데, 이전까지 글에 팽팽하게 흘렀던 긴장감이 삽입 섹스 장면에서 뚝 떨어졌던 걸로 봐서 이 작가는 체벌 외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체벌이라는 상황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포르노 소설이 처음에 성적 행동을 시작하고 점점 수위를 더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그의 글에서 체벌은 의외로 짧고 간단하게 끝난다. 물론 그의 글에서도 남자가 꿀밤을 때리다가 여자 팬티를 벗겨서 성기를 때리는 식으로 수위를 더해가는 패턴은 보였지만, ‘꿀밤-팬티 벗기기-성기 때리기’라는 각각의 상황을 일정한 호흡으로 간단하게 묘사하고 넘어가는 방식은 ‘발단-전개-절정’이라기 보다는 '반복과 변주'의 감각으로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그의 포스타입에 있는 여러 편의 소설 전체가 변주곡이기도 했다. 등장인물 남자는 학교 선배, 옆집 오빠, 과외선생, 의사 등등으로, 여자는 후배, 학생, 환자 등등으로 설정되어서 무수한 체벌의 상황을 연출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마주친 사람들이건 꼭 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는 설정에서 달라지는 건 호칭과 말투, 옷차림 묘사 같은 작은 부분들 뿐인 것이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아주 조금의 변화로, 몇 가지 단어들의 조합으로 끝없이 성적 판타지가 생성된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나는 이미 나와 있는 A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아직 쓰이지 않은 그의 글을 상상하는 것도 흐뭇했다.
또 하나 A 작가 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점이었다. 그의 소설 속 여자들은 나이는 어른이지만 거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말한다.
“남친이 무섭고 매도 아파서 엉엉 울어버렸어.” “또 까불거냐고 해서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벌 받기는 싫으니까... 앞으로 진짜 조심해야지!"
이 과장된 취약함이 또 자극적인 것이다. 강자에게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약하고 천진무구한 나, 이런 나에게 적당한 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약을 발라주고 위로해주는 상대... 글을 읽다 보면 체벌은 그저 구실일 뿐이고, 하염없이 권력 관계를 갈구하는 심리 자체가 A 작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작가의 글 중 특히 나에게 재미있었던 단편은 '대기업 남친'과 '무직 여친'이라는 설정에서 일어나는 체벌이었다. 그냥 남친이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명시해놓았다는 점이 너무... 포르노적이었다. 나에겐 섹스, 자지, 보지 같은 말보다 '대기업 남친'이라는 단어가 훨씬 음란하게 보였다. 이것이 우리의 욕망이구나.... 대기업과 무직이라는 사회적 위치 차이가 흥분의 포인트가 된다는 점이 나를 아주 수치스럽게 했는데, 이 수치심이 또한 성욕을 자극했고, 이걸 A 작가도 나도, 헤테로 여자들로 짐작되는 또 다른 독자들도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또 한 번 수치스러웠다.
나는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는데, 이혼 직후 결혼 생활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남아 있던 상태에선 남편과 아내가 등장하는 포르노 소설을 찾아헤맸다. 남편이 아내를 노예나 가축처럼 취급하는 글을 읽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제도에 대한 분노도, 결혼 생활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자 더는 남편과 아내가 등장하는 포르노를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여성비하적인 포르노를 소비하는 심리의 기저엔 자신에 주어진 현실을 소화하겠다는 필사적인 집념이 있는걸까?
A 작가를 포함해서, 내가 좋아하는 포르노 소설의 작가들은 여자일 거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이 쓴 포르노 소설은 여자들이 쓴 것과 전혀 다르다. 일단 묘사만 봐도 펠라치오 받는 쾌감을 길게 묘사한다든지, 같은 욕설을 해도 여자들의 글에선 욕설의 맥락과 효과가 훨씬 중요한데, 남자들의 글에선 그냥 질펀하게 욕하는 쾌감이 더 중요해보인다든지. 무심코 쓰는 단어, 지나가는 문장 하나에서도 작가가 누구인지 묻어난다. '여성 인권이 없는 세계관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달린 포르노 소설 앞에서 나는 작가의 젠더를 짐작할 뿐만 아니라 어떤 모성을 느낀다. 여성들이 읽는 포르노를 쓰는 여성 작가들, 그들의 글을 읽는 여성 독자들. 서로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키워주고 해소시켜주는 여성 집단. 이것이 모계 사회 아닌가? 남자들 앞에 엎드려서 벌 받는 여자들 이야기를 끝없이 써내는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여성혐오로 점철된 사회에서 웃고 춤추며 살아갈 수 있었겠나? 삶에 가해지는 모든 차별과 혐오를 페티시로 승화해서 우적우적 씹어삼키는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배윤민정
신여성 운영자, 에세이 작가. 사회의 통념에서 어긋나는 이야기,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쓰는 이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 인스타그램 @bae_yun_minjeong
* 신여성 프로그램 <포스트 포르노 정치학 세미나>에서 나눈 글입니다.
여성향 포르노에 대한 고찰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자위할 때 소비하는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아쉽다. 누군가와 무엇이 얼마나 좋은지 뾰족하고 깊숙하게 파고드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말이지. 사실 내 취향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도미넌트(dominant) 남성과 서브미시브(submissive) 여성이 나오는 포르노 소설이다. 그런데도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기 힘든 까닭은,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텍스트로 야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 적기 때문일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각종 플랫폼에 19금 웹소설이 흔한 것을 보면 여전히 포르노 소설을 향유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다만 그 안에서도 나를 자극하는 텍스트는 소수이며 (수백 편을 읽어도 마음에 드는 한 편 찾기가 어렵다!), 이 소수의 텍스트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취향 공동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를 찾아서 오늘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까? 포스타입이나 기타 플랫폼에 포르노 소설을 올리는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달아서 이 글이 어떤 취향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건지 한눈에 보여준다.
예컨대 등장인물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키워드인 #BL #GL #HL
인물들의 역학 구도를 보여주는 #남공여수 #여공남수
인물들의 행동을 드러내는 #자위 #야노 #쓰리섬 #갱뱅
트리거워닝으로 기능하는 #하드코어 #고수위 #빻취(빻은 취향) #모럴리스(Moral-less) 등등.
이런 해시태그가 취향에 맞는 글을 발견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똑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글도 어떤 글은 전혀 흥분되지 않고, 또 어떤 글은 성적 흥분에 미학적 자극까지 안겨준다. 읽고 나서 흥분되는 글과 입맛만 버렸다 싶은 글은 미세한 차이밖에 없는데, 그 미세한 차이야말로 바로 내 '취향'인 것이다. 이 미세한 차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 대화는 나에게 딱 맞는 포르노 소설만큼이나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 한 작가가 있다. 이제는 사라진 포스타입 운영자 A. 그는 정말이지 내 마음과 욕망을 빤히 읽는 사람 같았다. 과거에 그가 포스타입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땐 한 달에도 여러 편씩 짧은 소설이 올렸는데 어떤 소설도 입맛을 버리게 하지 않았고, 열 편 중 한 편은 아주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의 소설은 매번 동일한 패턴으로 전개된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자와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자가 등장하고, 남자가 사소한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서 여자를 체벌한다. 이게 다다.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복잡한 갈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등장하는 인물도 둘이 전부다. 체벌의 내용은 이마를 콩 쥐어박거나 엉덩이를 때리거나, 다리를 벌리게 해서 성기를 때리는 것이고 다른 방식의 접촉을 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편의 글 중에 한두 편 정도는 삽입 섹스 장면이 나온 적도 있긴 한데, 이전까지 글에 팽팽하게 흘렀던 긴장감이 삽입 섹스 장면에서 뚝 떨어졌던 걸로 봐서 이 작가는 체벌 외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체벌이라는 상황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포르노 소설이 처음에 성적 행동을 시작하고 점점 수위를 더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그의 글에서 체벌은 의외로 짧고 간단하게 끝난다. 물론 그의 글에서도 남자가 꿀밤을 때리다가 여자 팬티를 벗겨서 성기를 때리는 식으로 수위를 더해가는 패턴은 보였지만, ‘꿀밤-팬티 벗기기-성기 때리기’라는 각각의 상황을 일정한 호흡으로 간단하게 묘사하고 넘어가는 방식은 ‘발단-전개-절정’이라기 보다는 '반복과 변주'의 감각으로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그의 포스타입에 있는 여러 편의 소설 전체가 변주곡이기도 했다. 등장인물 남자는 학교 선배, 옆집 오빠, 과외선생, 의사 등등으로, 여자는 후배, 학생, 환자 등등으로 설정되어서 무수한 체벌의 상황을 연출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마주친 사람들이건 꼭 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는 설정에서 달라지는 건 호칭과 말투, 옷차림 묘사 같은 작은 부분들 뿐인 것이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아주 조금의 변화로, 몇 가지 단어들의 조합으로 끝없이 성적 판타지가 생성된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나는 이미 나와 있는 A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아직 쓰이지 않은 그의 글을 상상하는 것도 흐뭇했다.
또 하나 A 작가 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점이었다. 그의 소설 속 여자들은 나이는 어른이지만 거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말한다.
“남친이 무섭고 매도 아파서 엉엉 울어버렸어.” “또 까불거냐고 해서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벌 받기는 싫으니까... 앞으로 진짜 조심해야지!"
이 과장된 취약함이 또 자극적인 것이다. 강자에게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약하고 천진무구한 나, 이런 나에게 적당한 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약을 발라주고 위로해주는 상대... 글을 읽다 보면 체벌은 그저 구실일 뿐이고, 하염없이 권력 관계를 갈구하는 심리 자체가 A 작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작가의 글 중 특히 나에게 재미있었던 단편은 '대기업 남친'과 '무직 여친'이라는 설정에서 일어나는 체벌이었다. 그냥 남친이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명시해놓았다는 점이 너무... 포르노적이었다. 나에겐 섹스, 자지, 보지 같은 말보다 '대기업 남친'이라는 단어가 훨씬 음란하게 보였다. 이것이 우리의 욕망이구나.... 대기업과 무직이라는 사회적 위치 차이가 흥분의 포인트가 된다는 점이 나를 아주 수치스럽게 했는데, 이 수치심이 또한 성욕을 자극했고, 이걸 A 작가도 나도, 헤테로 여자들로 짐작되는 또 다른 독자들도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또 한 번 수치스러웠다.
나는 몇 년 전에 이혼을 했는데, 이혼 직후 결혼 생활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남아 있던 상태에선 남편과 아내가 등장하는 포르노 소설을 찾아헤맸다. 남편이 아내를 노예나 가축처럼 취급하는 글을 읽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제도에 대한 분노도, 결혼 생활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자 더는 남편과 아내가 등장하는 포르노를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여성비하적인 포르노를 소비하는 심리의 기저엔 자신에 주어진 현실을 소화하겠다는 필사적인 집념이 있는걸까?
A 작가를 포함해서, 내가 좋아하는 포르노 소설의 작가들은 여자일 거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이 쓴 포르노 소설은 여자들이 쓴 것과 전혀 다르다. 일단 묘사만 봐도 펠라치오 받는 쾌감을 길게 묘사한다든지, 같은 욕설을 해도 여자들의 글에선 욕설의 맥락과 효과가 훨씬 중요한데, 남자들의 글에선 그냥 질펀하게 욕하는 쾌감이 더 중요해보인다든지. 무심코 쓰는 단어, 지나가는 문장 하나에서도 작가가 누구인지 묻어난다. '여성 인권이 없는 세계관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달린 포르노 소설 앞에서 나는 작가의 젠더를 짐작할 뿐만 아니라 어떤 모성을 느낀다. 여성들이 읽는 포르노를 쓰는 여성 작가들, 그들의 글을 읽는 여성 독자들. 서로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키워주고 해소시켜주는 여성 집단. 이것이 모계 사회 아닌가? 남자들 앞에 엎드려서 벌 받는 여자들 이야기를 끝없이 써내는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여성혐오로 점철된 사회에서 웃고 춤추며 살아갈 수 있었겠나? 삶에 가해지는 모든 차별과 혐오를 페티시로 승화해서 우적우적 씹어삼키는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배윤민정
신여성 운영자, 에세이 작가. 사회의 통념에서 어긋나는 이야기,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쓰는 이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 인스타그램 @bae_yun_minjeong
* 신여성 프로그램 <포스트 포르노 정치학 세미나>에서 나눈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