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신여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에세이/르포디트랜지션 (주곰)

디트랜지션 (주곰)



스물다섯 되던 해, 첫 연인 A를 만났다. A에게 나는 첫 연애 상대가 아니었지만, A 또한 나와 같은 퀴어성을 지닌 존재와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첫사랑이라 말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별했지만, A를 떠나보낸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이 되지 못하였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A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A를 처음 만났을 때는 트랜지션을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였고, 부작용으로 인해 호르몬 주사를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부작용에는 여러 증상이 있지만, 내 경우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가려움을 동반한 피부 트러블이 온몸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호르몬 주사로 인한 문제는 아니길 바랐다. 주사를 맞지 못하면 약한 존재가 될 것만 같았고, 남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피부과 여러 군데에서 진료를 받고 열심히 약을 챙겨 먹었지만, 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고심 끝에 최후의 방법으로 호르몬 주사를 중단했더니 가려움과 트러블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부작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한동안 주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A와의 연애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좀 더 남성에 가까운 연인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A는 성별과 무관하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충분히 여겨주는 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완전한‘ 남성일 수 없는 내 존재가 어딘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신체적 완전성‘에 대한 것이었고, 나는 스스로 신체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A와 첫 밤을 함께 보내기 전에, 그 ‘불완전함’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조차 내 몸이 낯설 때가 있었기에, A에게도 어느 정도의 사전 정보는 필요할 것 같았다. 


A가 살던 동네에 있는 작은 호수가 보이는 공원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르몬 주사로 인한 여러 신체적 변화, 일반적인 여성/남성의 몸과는 조금 다른 내 몸의 부분들, 그리고 수술 흉터에 대하여. A는 특유의 반짝이는 눈으로 내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고는 미리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런 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듯이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며칠 뒤, 우리는 도심에 위치한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에서 처음으로 함께하는 밤을 맞이했다. 술은 와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 다 음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처음이라는 긴장감을 내려놓기 위해 어느 정도의 취기가 필요했다. 대화를 안주 삼아 적당히 취했을 즈음, A와 나는 눈빛만으로도 촉감을 느끼듯,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소통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열렬히 탐색하면서 둘만이 존재하는 시간 속에 흠뻑 빠져있다가도,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오롯이 한 시선 안에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 A는 내 몸에 선명히 자리 잡은 흉터들을 어루만져주었고, 나는 그동안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사랑과 치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가슴과 팔에 짙게 남은 큼직한 흉터들,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성별의 모호함,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몸의 모습.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내 해명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던 삶의 속성들이, 이제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치 않은 평범한 나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 사이에는 육체적 끌림을 넘어 정서적 연결이 이어졌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대하는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어디에서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으로 혼자서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던, 그래서 잊고 살았던 이야기를 A에게 털어놓았다.


초등학생 시절 가까운 남성 가족으로부터 겪었던 성범죄 피해. 일종의 그루밍 성범죄였고 내가 성범죄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 나는 성에 대한 개념을 아직 다 알지 못할 만큼 어린아이였으니까. A에게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중학생 때, 19살 때도 가해자가 같은 수법을 시도했었다는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어려운 형편에 '내 방'이라는 공간을 가져보지 못한 나는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망이 깊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1-2월 쯤, 자퇴생 신분으로 수능 준비를 결심했던 나는 나만의 공간을 더욱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마침 지방에서 홀로 살던 가해자의 집에 남는 방이 있었기에, 고양이와 나는 그곳에 가서 지내기로 했었다. 그토록 바라던 내 방이 생긴다는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거의 이사 수준으로,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건과 고양이에게 필요한 모든 용품을 챙겨 서울집을 떠났고, 새로운 곳에서 온전한 나의 시공간을 만끽하며 지낼 생각에 들떠있었다.


2주쯤 지냈을까.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진 늦은 밤, 한창 잠들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려는 순간,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가 덮고 있던 이불에 손을 얹고서는 미세하게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내가 자는 동안 악몽을 꾸듯 소리 지르더라며 걱정하는 뉘앙스로 몸을 더욱 밀착하더니, 초등학생 때의 그 일을 똑같이 시도하려 했다. 그때는 잘못된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았기에 무서움을 꾹 참고 거부감을 표시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잠시 후 그는 살며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두 잊고 있었다. 어린 시절 성범죄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비슷한 일이 그 이후로 몇 차례 반복되었다는 사실도. 모두 잊은 채 살아왔다. 잊어야 살아갈 수 있었나 보다.


그가 다시 내 방으로 들어올까 봐 밤새 두려움에 떨었던 열아홉의 나는, 날이 밝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서울행 기차표 두 자리를 나란히 예매했다.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뒤, 곧장 간단한 짐을 챙기고 고양이를 이동 가방에 넣어 황급히 집에서 빠져나와, 쫓기기라도 하는 듯 불안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았다. 영문도 모른 채 한겨울 낯선 바깥 공간으로 나오게 된 고양이는 택시를 탄 후에도 한참을 큰 소리로 울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기차 출발까지는 긴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한참 동안 승강장 벤치에 앉아 떨어야 했다. 


고양이의 울음이 멈추지 않으면 기차 탑승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고양이는 서서히 울음을 그치더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서울집에 도착할 때까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곤히 잠을 자는 것이었다. 생활 영역을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가진 고양이가, 자신의 불안을 뒤로한 채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 일단은 우리, 이곳을 무사히 잘 벗어나자는 듯이. 기차 안에서 고양이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그렇게 소리 없이 내 곁을 꼭 지켜주었다.


A에게 피해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 모든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내 얼굴을 바라봐주던 A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겠다는 듯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목소리를 통한 언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우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속마음에서조차 꺼내기 두려워 잊고 살았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나올 만큼, A와 함께 밤을 보내는 동안 나는 안전하게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다. 호르몬 주사를 중단한 상태였음에도, 흉터와 몸을 모두 드러낸 상태였음에도, 나에게서 약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불안감 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리며 나를 꼭 끌어 안아주던 A의 품은 너무도 안락하고 충만해서, 나는 앞으로 트랜지션이라는 ‘갑옷’ 없이도 세상을 안전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A는 단 한 번도 내가 무언가를 바꾸길 바라거나, 나에게 부족함을 느낀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한창 관계를 이어가던 중 일련의 일들이 있었고, 시스 남성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분노,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끝도 없이 치솟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울분을 주사기로 풀었다. A와의 첫 밤 이후로 계속해서 중단해왔던, 더 이상 내 삶에는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남성 호르몬 주사를, 화풀이하듯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야만 내가 무사히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때 겪었던 모든 부정적 감정과 어려움이 앞서 말한 일련의 일들 때문도, A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감내해야 했던 시스 남성에 대한 폭발적인 열등감,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의 몸처럼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 비참하리만큼 집착하게 되었던 시스 남성과 나 사이의 자기 혐오적 비교. 내 존재가치를 무참히 휩쓸어 없애려 들던 그 폭풍 같은 감정은 점점 내 머릿속을 집어삼키며 나를, 우리 관계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A와 만나면서 나는 점점 서운함을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한 시스 남성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A 앞에서 마구 쏟아내기도 했다. 어리석게도 시스 남성에 대한 나의 불편한 감정은 애인에 대한 집착과 통제 욕구로 나쁘게 전이되고 말았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동안 A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느끼던 못된 감정을 A 또한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괴로워하는 애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막막하고 무력한 마음 까지, 어쩌면, 나보다 더한 괴로움을 A는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 흐르던 연대와 같은 소중한 종류의 감정에,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시스 남성에 대한 역한 감정이 오염되면서, 서로의 마음에는 아픈 것들만이 더욱 크게 남게 되었다. 


자주 영원을 말했던 우리 관계는 그렇게 3년 반 정도의 시간을 통과해 종료되었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날, A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A에 대한 마음이 조금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말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별을 통보받은 날 이후로 몇 차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상적인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나는 견뎌내야만 했다. 여전히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어렵게 꺼냈을 그 마음을 존중하고 싶었다. 물론 내 상태는 완전하게 망가졌다. 극심한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야 했고, 나를 돌보지 못해도 고양이는 돌봐야 했다. 그때의 무기력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주기적으로 맞던 호르몬 주사마저 잊도록 만들었다. 트랜지션의 중단, 디트랜지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몇 달 사이 체중이 20kg 가까이 빠졌던가. 20대 내내 술을 멀리하던 나는 A와 이별했던 해에 하루도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무기력에 휩싸여 주사 맞는 날마저 놓쳤던 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주사를 맞지 않고 있다. 이유를 찾자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 절반과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거부감 느끼는 ‘남성’으로 살고 싶은 게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 절반쯤인 것 같다. 


호르몬 주사를 완전히 중단한 이후, 예상치 못하게도 심리적 편안함을 조금씩 되찾게 되었다. 더 이상 시스 남성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끓어오르는 성적 욕구와 불만족스러운 신체 사이의 괴리감을 느낄 필요도, 남성이 될 수 없음에 부족함을 느끼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게 되면서, 점점 마음이 평안해졌다. 디트랜지션은 나에게 있어서 남성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중단하는 일이었고, 남성이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제야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쓸모없는 감정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호르몬 중단 이후의 신체적 변화는 정확히 주사를 맞을 때의 역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쉽게 생겨난 근육과 힘은 다시 제자리로 공중 분해되듯 사라져 하루가 다르게 근력이 낮아짐을 체감했다. 나는 생각보다 몸이 돌아오는 속도가 빨랐던 건지, 거의 2개월 만에 월경이 다시 시작되기도 했다. 또, 주사를 맞을 때 골반의 지방이 줄어들고 상체가 두꺼워졌던 것과 달리, 지금은 계속해서 하체에 지방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성적 욕구가 현저히 낮아졌는데, 이 부분은 내가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목소리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한 번 변성기를 거쳐서 굵어진 목소리는 아무리 몸에서 에스트로겐이 다시 왕성하게 분비된다 한들, 이전의 목소리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성으로 살고자 한다 해도, 목소리를 내는 순간 설명이 필요한 존재가 되고 만다.


디트랜지션을 택했지만, 여전히 남성들에게는 내가 남성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낯선 남성 앞에서 내 목소리가 굵게 나올 때 안전감을 느낀다. 남성에게 남성으로 인식되었을 때, 성범죄 대상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 남성의 관심 밖 존재가 되는 감각이 나는 좋다. 나의 성애적 매력을 과대평가하거나 남성 간의 성범죄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으로서 겪었던 성범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나는 남성 앞에서 여성이 아닌 채로 존재할 때, 슈퍼맨이 망토를 입듯, 전장에서 갑옷을 입듯 누구도 함부로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라는 안전감을 느낀다. 

반대로 여성들과 함께할 때는 그들이 나의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여성인 누군가가 나를 남성으로 인식했을 때 벌어질 심리적 거리감은 늘 아쉽다. 그래서 자꾸 설명하고 싶어진다.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당신과 같은 2차 성징을 겪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경험해온, 주기적으로 생리를 하는, 여성이라고. 생리하지 않거나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존재를 배제하려는 말이 아니라, 평범치 않은 성별 여정을 겪어온 내가, 당장 여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 내 몸에 남은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일 뿐이다.


<치명적 에세이 쓰기>에 신청한 것도, ‘트랜지션, 디트랜지션’을 주제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신여성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나의 이런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왜곡 없이, 무사히 가닿을 것 같았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설명하지 않으면 남성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여성인 자신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싶기에. 남성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지 않지만, 남성들 앞에서는 내가 여성이 아니길 바라기에. 곤란하지 않은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둘 중 하나에 속해야 하는데,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남성에 대한 방어는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여성들과 소통하고 여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필요할 때는 설명을 통해 더욱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런 삶. 


그렇게 조금씩 연결되기 위해 나는 내 삶을 들고, 한 걸음 용기를 내보았다.



주곰

09년생 고양이 곁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사람 



* 신여성 프로그램 <치명적 에세이 쓰기 14기>에서 나눈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