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탈코의 여정
지난주 금요일에 머리를 깎은 후 칭찬을 많이 들었다. 멋지다고, 히힛. 그런데도 오늘 아침 머리를 하나로 묶고 소리내어 글쓰기 모임에 오는데 순간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탈코를 극단적으로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친구들의 생각이 아니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다.
왜 투블럭 머리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볼 것이라 염려했을까? 진정 내 탈코는 극단적인가? 나는 꾸밈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에 샤워를 한 후 옷을 입기 위해 날씨와 하루 일정을 체크한 후 복장을 결정한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기온에 맞추어 옷과 신발을 고른다. 운동을 할 예정이면 운동복을 입고, 그게 아니면 평상복을 입는다. 고려사항은 딱 두 가지: 기능과 편안함. 이 두 가지가 같은 말인가? 기능성이 높으면 편안하고, 기능성이 낮으면 불편할 테니.
내가 가장 먼저 벗어 던진 코르셋은 매니큐어였다. 십여 년 전 일인데, 그 당시만 해도 붙이는 젤네일이 나오기 전이라 손톱 하나하나 붓질을 해서 액상을 바른 후, 최소 20분간 선풍기를 틀고 말려야 했다. 나는 ‘손’ 훈련받는 개처럼 두 손을 가슴 앞에 들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도 갑갑했다. 열 손가락 붙어 있는 멀쩡한 두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투명 수갑을 찬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엄마가 네일숍을 운영하다가 판 적이 있어서 공짜로 받은 매니큐어가 여러 병 있었는데 남에게 주거나 버렸다. 남은 매니큐어보다 꼼짝없이 앉아서 버리는 내 시간이 더 아까웠다.
나의 탈코르셋은 답답하다고 느끼는 몸의 감각과 내 시간자원의 소중함을 원동력으로 실행되었다. 20대 초반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샤워 중 거품을 내어 다리털과 겨드랑이털을 밀었는데, 어느 순간 이 행위가 너무도 지겹고 귀찮게 느껴졌다. 시간도 걸리는 데다가 좁다란 샤워실 안에서 얄따란 욕조 가장자리에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다리를 미는 장면이 몸개그를 보는 마냥 우습게 느껴졌다. 내 마지막 일회용 면도기를 비닐봉지가 씌워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안녕.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비슷한 시기에 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했다. 몇 년간 한 머리스타일은 숏단발인데, 뒤쪽이 짧고 머리카락이 턱선을 따라 사선으로 내려오는 속히 말하는 보브컷이었다. 넙데데해 보이는 내 얼굴형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볼이 통통해서 중학교 때부터 성당오빠들이 자주 놀렸는데, 그들이 붙여준 별명이 달덩이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나는 앞머리를 더듬이처럼 양옆으로 길게 뽑아 볼살을 가리고 다녔다.
투블럭을 시도한 건 몇 년 전이다. 나는 모발이 굵고 숱이 많아서 단발인데도 머리를 말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5분이 넘게 헤어드라이기를 쏘이고 있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짓이지? 화장실 문 밖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수만 가지 있는데!’ 매니큐어를 말리던 시절과 비슷하게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선풍기에 매여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드라이기에 매여 있었다. 머리카락의 총량을 줄여야 했다.
머리에 끈적거리는 것을 바르기 싫어하고, 운동할 때 하나로 묶는 걸 좋아해서, 가능한 머리카락을 최소화한 게 지금의 헤어스타일이다. 수건으로 잘 털고 난 후 2-3분이면 머리가 마르는데, 매번 기분이 그렇게 통쾌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평생을 짧은 머리로 살아온 남자들이 생각나며 화가 좀 난다. 특히나 이상형으로 ‘긴 생머리 여성’을 꼽는 한국 남자들을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난다. ‘이, 씨발놈들아. 너희가 머리 길러봐. 일주일도 못 버티고 자를걸?’
나의 탈코르셋 여정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탈코는 외모 한 두 군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개선하고, 삶 속 모든 결정들을 내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들에 맞추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0대에 들어서며 내가 입고 있는 코르셋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정수리 주변으로 새치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부지런히 바르지 않은 탓에 광대뼈 위 볼을 기미 주근깨가 덮어버렸다. 이는 엄마 눈에도 바로 띄어서 그가 반강제로 안겨준 비타민 씨 영양제품을 매일 바르고 있다. 최근에는 세일을 하길래 근처 피부관리실에서 100불 넘는 돈을 쓰고 왔다. 새치는? 보이는 족족 족집게로 뽑는다. 아, 이토록 탈코의 길은 멀고도 멀구나.
결국에는 내 흰머리와 기미, 주근깨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작년에는 새치가 한 달에 한두 개 났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개가 난다. 언제까지 거울 앞에 붙어 아픈 팔을 들고 흰머리를 뽑을 거냔 말이다.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버리고 내 몸을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제모를 중단한 시기에도 적응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한동안은 털이 숭숭 난 다리를 남들에게 내보이기가 창피해서 긴바지만 입고 다니기도 했다. 겨드랑이털에 대한 수치감은 더 심했다. 탈코 전까지만 해도 털이 수북한 여자의 겨드랑이를 보면 비위생적이고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드랑이털, 다리털, 짧은 머리. 극단적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코르셋이 내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 때면 이렇게 대꾸한다. ‘남자들은 다 있는 거잖아. 쟤들은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저러고 다니잖아.’ 그러면 그동안 버려진 시간과 노력과 돈이 억울해서라도 탈코르셋을 다시 다짐하게 된다. ‘기미야, 흰머리야. 내가 환영하기는 힘들지만 내쫓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볼게.’ 내 나이 오십이 되면 그들과도 좀 친해져 있기를 바란다.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
기나긴 탈코의 여정
지난주 금요일에 머리를 깎은 후 칭찬을 많이 들었다. 멋지다고, 히힛. 그런데도 오늘 아침 머리를 하나로 묶고 소리내어 글쓰기 모임에 오는데 순간 걱정이 되었다.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탈코를 극단적으로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친구들의 생각이 아니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다.
왜 투블럭 머리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볼 것이라 염려했을까? 진정 내 탈코는 극단적인가? 나는 꾸밈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에 샤워를 한 후 옷을 입기 위해 날씨와 하루 일정을 체크한 후 복장을 결정한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기온에 맞추어 옷과 신발을 고른다. 운동을 할 예정이면 운동복을 입고, 그게 아니면 평상복을 입는다. 고려사항은 딱 두 가지: 기능과 편안함. 이 두 가지가 같은 말인가? 기능성이 높으면 편안하고, 기능성이 낮으면 불편할 테니.
내가 가장 먼저 벗어 던진 코르셋은 매니큐어였다. 십여 년 전 일인데, 그 당시만 해도 붙이는 젤네일이 나오기 전이라 손톱 하나하나 붓질을 해서 액상을 바른 후, 최소 20분간 선풍기를 틀고 말려야 했다. 나는 ‘손’ 훈련받는 개처럼 두 손을 가슴 앞에 들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도 갑갑했다. 열 손가락 붙어 있는 멀쩡한 두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투명 수갑을 찬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엄마가 네일숍을 운영하다가 판 적이 있어서 공짜로 받은 매니큐어가 여러 병 있었는데 남에게 주거나 버렸다. 남은 매니큐어보다 꼼짝없이 앉아서 버리는 내 시간이 더 아까웠다.
나의 탈코르셋은 답답하다고 느끼는 몸의 감각과 내 시간자원의 소중함을 원동력으로 실행되었다. 20대 초반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샤워 중 거품을 내어 다리털과 겨드랑이털을 밀었는데, 어느 순간 이 행위가 너무도 지겹고 귀찮게 느껴졌다. 시간도 걸리는 데다가 좁다란 샤워실 안에서 얄따란 욕조 가장자리에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다리를 미는 장면이 몸개그를 보는 마냥 우습게 느껴졌다. 내 마지막 일회용 면도기를 비닐봉지가 씌워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안녕.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비슷한 시기에 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했다. 몇 년간 한 머리스타일은 숏단발인데, 뒤쪽이 짧고 머리카락이 턱선을 따라 사선으로 내려오는 속히 말하는 보브컷이었다. 넙데데해 보이는 내 얼굴형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볼이 통통해서 중학교 때부터 성당오빠들이 자주 놀렸는데, 그들이 붙여준 별명이 달덩이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나는 앞머리를 더듬이처럼 양옆으로 길게 뽑아 볼살을 가리고 다녔다.
투블럭을 시도한 건 몇 년 전이다. 나는 모발이 굵고 숱이 많아서 단발인데도 머리를 말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5분이 넘게 헤어드라이기를 쏘이고 있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짓이지? 화장실 문 밖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수만 가지 있는데!’ 매니큐어를 말리던 시절과 비슷하게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선풍기에 매여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드라이기에 매여 있었다. 머리카락의 총량을 줄여야 했다.
머리에 끈적거리는 것을 바르기 싫어하고, 운동할 때 하나로 묶는 걸 좋아해서, 가능한 머리카락을 최소화한 게 지금의 헤어스타일이다. 수건으로 잘 털고 난 후 2-3분이면 머리가 마르는데, 매번 기분이 그렇게 통쾌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평생을 짧은 머리로 살아온 남자들이 생각나며 화가 좀 난다. 특히나 이상형으로 ‘긴 생머리 여성’을 꼽는 한국 남자들을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난다. ‘이, 씨발놈들아. 너희가 머리 길러봐. 일주일도 못 버티고 자를걸?’
나의 탈코르셋 여정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탈코는 외모 한 두 군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개선하고, 삶 속 모든 결정들을 내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것들에 맞추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0대에 들어서며 내가 입고 있는 코르셋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정수리 주변으로 새치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부지런히 바르지 않은 탓에 광대뼈 위 볼을 기미 주근깨가 덮어버렸다. 이는 엄마 눈에도 바로 띄어서 그가 반강제로 안겨준 비타민 씨 영양제품을 매일 바르고 있다. 최근에는 세일을 하길래 근처 피부관리실에서 100불 넘는 돈을 쓰고 왔다. 새치는? 보이는 족족 족집게로 뽑는다. 아, 이토록 탈코의 길은 멀고도 멀구나.
결국에는 내 흰머리와 기미, 주근깨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작년에는 새치가 한 달에 한두 개 났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개가 난다. 언제까지 거울 앞에 붙어 아픈 팔을 들고 흰머리를 뽑을 거냔 말이다.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버리고 내 몸을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제모를 중단한 시기에도 적응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한동안은 털이 숭숭 난 다리를 남들에게 내보이기가 창피해서 긴바지만 입고 다니기도 했다. 겨드랑이털에 대한 수치감은 더 심했다. 탈코 전까지만 해도 털이 수북한 여자의 겨드랑이를 보면 비위생적이고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드랑이털, 다리털, 짧은 머리. 극단적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코르셋이 내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 때면 이렇게 대꾸한다. ‘남자들은 다 있는 거잖아. 쟤들은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저러고 다니잖아.’ 그러면 그동안 버려진 시간과 노력과 돈이 억울해서라도 탈코르셋을 다시 다짐하게 된다. ‘기미야, 흰머리야. 내가 환영하기는 힘들지만 내쫓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볼게.’ 내 나이 오십이 되면 그들과도 좀 친해져 있기를 바란다.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