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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에세이/르포여자친구의 신발은 어디서 벗겨졌을까 (간쓸개)

여자친구의 신발은 어디서 벗겨졌을까



저는 20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사귀며 함께 동거하고 있습니다. 작은 경차로는 올라가기 힘든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우회전으로 급히 꺾어 들어가야 하는 숨은 곳. 그곳에 작은 아파트 하나가 있습니다. 절벽 비스무레한 높이에서 아래로 저 멀리 전철과 마을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이고, 여름에는 펜스 주위로 새빨간 장미가 가득 핍니다. 주위에 하천이 있어서 다리를 건너야만 이곳에 올 수 있기 때문인지, 이곳에 있으면 모든 상권과 인간관계, 그리고 어김없이 따라붙는 배민 5천원 추가 배달비인지, 어쩐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듭니다.


저희는 약 2년여간 동거하던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함께 이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최근 저희는 이사 준비로 바쁩니다. 아침에 여자친구가 일을 나가면, 저는 일어나서 집안에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신발장부터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가 가지고 있는 신발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 신발장은 항상 정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었습니다. 모두 바닥에 꺼내서, 하나 하나씩 짝을 맞춰보았습니다. 저와 만나기 전부터 신어온 신발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신발들이 많았습니다.


뾰족한 힐과 반짝거리는 징, 화려한 패턴의 디자인,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가죽 부츠까지. 이런 화려한 신발들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여자라면 남자 몇 명 정도는 거뜬히 거느릴 법하다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실제로 여자친구는 수많은 연애 경험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옆자리가 비지 않았고 성인 이후 수두룩하게 받은 프로포즈들과 결혼 경험, 이내 파트너의 형태로 남은 사람들 및 아직도 1n년 순애를 몸소 실천하는 수많은 남자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연애를 마친 저로서는 그 모든 것이 궁금해 하나하나 물어보았지만, 말해주지 않은 다른 일화들이 이 화려한 신발들을 신고 일어났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 신발을 신고 어느 거리를 걸었는지, 어느 계단을 올랐는지, 누구의 집 앞에서 벗겨졌을지, 혹은 누군가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벗겨줬을지, 저는 알지 못하는 순간들을 한참 생각하며 야릇한 감정에 빠져들었습니다. 성욕인지, 분노인지, 질투인지 모르겠으나 저를 이렇게 만드는 게 이 사람의 타고난 재능인 것도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다른 남자에게 욕망 당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할 때면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아래가 젖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


사실 신발장을 정리하고 있던 이 현관이야말로 그 불상사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날은 아직 저희가 사귀기 전, 처음으로 제가 여자친구의 집에 초대받았던 날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여자친구가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저는 기숙사에서 택시를 부르며 가진 것 중에 제일 값이 나가는 나이키 된장 포스의 뒤축을 꺾어 신고 급하게 뛰쳐나갔습니다. 마중 나온 여자친구는 징이 달린 샌들을 신은 채 편의점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가운 같은 얇은 실크 옷을 걸치고 팔짱을 낀 채로, 샤워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듯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습니다. 긴장돼서 침조차 잘 못 삼키고 있던 저와 달리, 여자친구는 눈을 가늘게 접은 채 여유롭게 웃었습니다. 저희는 술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집 현관에는 뒤축이 꺾여있는 된장 포스와 스트랩이 풀리지 않은 샌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뒹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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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잠이 깼습니다. 남자 구두 소리였습니다. 저의 초라한 된장 포스 옆에 처음으로 다른 남자의 신발이 들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주위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는지, 남자는 제 신발을 보지 못한 듯 자연스럽게 집 안을 돌아다니며 두고 간 자신의 짐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친구와 저는 안방 침대에 함께 누워 있었고, 여자친구는 아직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기야” 라고 말하며 거침없이 안방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고, 저는 급하게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렸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 두근거림이 제 이상 성욕의 시초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끼익-


남자가 문을 열더니 발걸음이 잠시 멈췄습니다. 뒷걸음질 치는가 하더니, 다시 돌아와 제가 머리 끝까지 덮은 이불을 집게 손가락 끝으로 슬며시 잡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확인하려는 그 남자의 손가락도 떨렸고, 잡아끄는 제 손도 떨렸습니다. 매력 있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부치 포함)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란, 결국 집게 손가락 끝으로 이불 귀퉁이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생물학적 힘의 차이에 져버려 이불이 베개까지 내려갔고, 제 짧은 숏컷이 드러났습니다. 남자는 뒷걸음질 치더니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여자친구를 깨워 방금 일어난 일을 전달했습니다. 눈을 비비며 제 얘기를 듣더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혼자 택시 타고 갈 수 있지?”


저는 멍하게 택시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았고, 모든 남자들이 탐하는 여자의 매력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습니다. 확실히 두 수컷이 이불을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코 자던 여자가 한층 더 고고해 보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


여자친구의 화려한 신발들을 다시 신발장에 하나씩 세워두었습니다. 짝을 맞추고, 굽이 닳은 것들을 손으로 매만지며, 이 신발이 다른 남자의 집에서 결국 벗겨지고 그 옆에서 우아한 자태로 곤히 잠들 여자친구를 떠올리며 파블로프의 개처럼 다시 아래가 젖었습니다. 


정리는 나중에 마저 하기로 했습니다.



간쓸개 

연상의 여자친구에게 간쓸개라도 다 주겠다는 뜻



* 신여성 <치명적 에세이 쓰기 15기> 멤버 간쓸개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