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자가 용사보스라니!
지난주 글쓰기 모임 동료들에게 어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토로한 후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방금 반전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삶을 깨도 깨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임에 비유했었는데, 그 어려워지는 단계의 배후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엥? 뭐라고? 내가 최종보스인 신자본주의나 백인우월주의, 여성차별적 가부장제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최종보스 왤케 많아?) 나도 작지 않은 보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름하여 용사보스! 용자가 용사라니 ㅎㅎ
이 보스의 문제는 용감한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첫째, 안전해 보이는 공간을 찾아 조용히 산다. 두 번째, 동료를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난다. 나는 30대까지만 해도 첫 번째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구직, 직장생활, 새로운 구직을 반복했고, 나와 사진관 가족사진 같은 가족을 꾸릴 남자 배우자를 찾아 연애를 반복했다. 그 와중 석사학위를 두 개나 땄고, 이것저것 경험치를 쌓았지만,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제발 안전하길 기도하며 굴을 더 깊게 파고, 돌담을 더 높게 둘렀다.
내가 있는 땅굴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 건 아마도 30대 중반 내가 퀴어임을 깨달았을 때일 것이다. 나와 짝꿍은 그의 박사학위를 위해 미중부 아이오와 주의 작은 대학도시에서 5년을 머물렀는데, 그 시간은 내게 어마어마하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사 가기 전 1년 정도 임신을 시도했었는데, 타주로 가는 큰 이사로 인해 중단되었었고, 아이오와에 사는 동안 우리는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다시 진중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안 가지기로 결정을 했다. 이 시기에 나는 나의 성정체성이 뭔지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책을 함께 읽는다길래 성소수자 북클럽 모임을 다니다가 나도 퀴어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상담치료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을 탐하는 게 나만 그런 거였어? 다들 그런 거 아니었어?!!’
내가 퀴어 정체성을 찾아가는 동시기에 비건생활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우연치 않게 아이오와에서 만나 절친이 된 크리스틴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변화를 겪었다. 크리스틴과 나는 서로에게 가장 큰 심적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 경험을 통해 매우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나는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퀴어로 커밍아웃하는 과정과 비건생활을 지양하게 되는 과정은 결이 비슷해 보여. 둘 다 어린 시절부터 규정된 삶의 방향을 거스르는 행위거든. 그 길을 벗어나 한 걸음 옆으로 비켜나갈 때마다 점점 더 용기와 확신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퀴어정체성을 이제는 온 세상을 향해 외치고, 나와 생판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걸어다니는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요즘 미국 소설가 옥타비어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의 우화”를 한국 페미니즘 북클럽 멤버들과 함께 읽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17세 소녀인 로런에게 이입이 많이 된다. 그는 장벽으로 둘러쳐진 마을에서 사는데, 언젠가는 그 밖에서 사는 부랑자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 믿으며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아빠를 포함한 어른들은 로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동네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한다며 꾸짖는다. 로런은 그들의 태도가 매우 불만스럽니만 한편으로는 부러워한다. 자신도 그들처럼 현실을 부정하며 살면 참 마음이 편하겠다고.
내가 내게 주어졌다고 믿었던 외길을 떠나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며 시작한 것 중 하나는 주체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사회가 나에게 주입해 온 정보들이 대부분 거짓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에 맞설 방법은 진실확보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에 맞추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 굳게 자리 박힌 정상성의 틀을 한조각 한조각 깨부수어 버려야 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강의를 참석하며 세상에 대해 배워나갈수록 삶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인간종의 욕심과 불안감은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 역사가 오래되어 체계가 굳건하고 사회 구석구석 악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진짜 눈 가리고 아웅 하거나 뇌의 한 부분을 절제해 “바보”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똑바로 눈뜨고 바라보는 일은 그렇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나는 44세가 되며 나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용자. 이 이름은 마법처럼 매일 내게 용기를 가져다주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버겁다. ‘넌 지치지도 않니? 왜 이렇게 계속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 칼대신 치켜들고 있는 펜을 내려놓고, 길 옆 강물에 풍덩 빠져 흘러가고 싶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숲 속 구석의 풀밭에 마냥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이곳저곳 휴식이라는 바위에 앉아있다가 아름답게 지저귀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간다. 내 인생 첫 30여 년간 살았던 첫 번째 방법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어디에 숨어있든 영원히 안전한 곳은 없다는 걸 이제 아니까. 그래서 피곤하고 지겹지만 나는 오늘도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함께 할 동료들을 찾아서.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
용자가 용사보스라니!
지난주 글쓰기 모임 동료들에게 어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토로한 후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방금 반전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삶을 깨도 깨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임에 비유했었는데, 그 어려워지는 단계의 배후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엥? 뭐라고? 내가 최종보스인 신자본주의나 백인우월주의, 여성차별적 가부장제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최종보스 왤케 많아?) 나도 작지 않은 보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름하여 용사보스! 용자가 용사라니 ㅎㅎ
이 보스의 문제는 용감한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첫째, 안전해 보이는 공간을 찾아 조용히 산다. 두 번째, 동료를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난다. 나는 30대까지만 해도 첫 번째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구직, 직장생활, 새로운 구직을 반복했고, 나와 사진관 가족사진 같은 가족을 꾸릴 남자 배우자를 찾아 연애를 반복했다. 그 와중 석사학위를 두 개나 땄고, 이것저것 경험치를 쌓았지만,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제발 안전하길 기도하며 굴을 더 깊게 파고, 돌담을 더 높게 둘렀다.
내가 있는 땅굴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 건 아마도 30대 중반 내가 퀴어임을 깨달았을 때일 것이다. 나와 짝꿍은 그의 박사학위를 위해 미중부 아이오와 주의 작은 대학도시에서 5년을 머물렀는데, 그 시간은 내게 어마어마하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사 가기 전 1년 정도 임신을 시도했었는데, 타주로 가는 큰 이사로 인해 중단되었었고, 아이오와에 사는 동안 우리는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다시 진중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안 가지기로 결정을 했다. 이 시기에 나는 나의 성정체성이 뭔지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책을 함께 읽는다길래 성소수자 북클럽 모임을 다니다가 나도 퀴어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상담치료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을 탐하는 게 나만 그런 거였어? 다들 그런 거 아니었어?!!’
내가 퀴어 정체성을 찾아가는 동시기에 비건생활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우연치 않게 아이오와에서 만나 절친이 된 크리스틴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변화를 겪었다. 크리스틴과 나는 서로에게 가장 큰 심적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 경험을 통해 매우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나는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퀴어로 커밍아웃하는 과정과 비건생활을 지양하게 되는 과정은 결이 비슷해 보여. 둘 다 어린 시절부터 규정된 삶의 방향을 거스르는 행위거든. 그 길을 벗어나 한 걸음 옆으로 비켜나갈 때마다 점점 더 용기와 확신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퀴어정체성을 이제는 온 세상을 향해 외치고, 나와 생판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걸어다니는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요즘 미국 소설가 옥타비어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의 우화”를 한국 페미니즘 북클럽 멤버들과 함께 읽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17세 소녀인 로런에게 이입이 많이 된다. 그는 장벽으로 둘러쳐진 마을에서 사는데, 언젠가는 그 밖에서 사는 부랑자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 믿으며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아빠를 포함한 어른들은 로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동네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한다며 꾸짖는다. 로런은 그들의 태도가 매우 불만스럽니만 한편으로는 부러워한다. 자신도 그들처럼 현실을 부정하며 살면 참 마음이 편하겠다고.
내가 내게 주어졌다고 믿었던 외길을 떠나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며 시작한 것 중 하나는 주체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사회가 나에게 주입해 온 정보들이 대부분 거짓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에 맞설 방법은 진실확보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에 맞추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 굳게 자리 박힌 정상성의 틀을 한조각 한조각 깨부수어 버려야 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강의를 참석하며 세상에 대해 배워나갈수록 삶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인간종의 욕심과 불안감은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 역사가 오래되어 체계가 굳건하고 사회 구석구석 악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진짜 눈 가리고 아웅 하거나 뇌의 한 부분을 절제해 “바보”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똑바로 눈뜨고 바라보는 일은 그렇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나는 44세가 되며 나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용자. 이 이름은 마법처럼 매일 내게 용기를 가져다주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버겁다. ‘넌 지치지도 않니? 왜 이렇게 계속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 칼대신 치켜들고 있는 펜을 내려놓고, 길 옆 강물에 풍덩 빠져 흘러가고 싶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숲 속 구석의 풀밭에 마냥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이곳저곳 휴식이라는 바위에 앉아있다가 아름답게 지저귀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간다. 내 인생 첫 30여 년간 살았던 첫 번째 방법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어디에 숨어있든 영원히 안전한 곳은 없다는 걸 이제 아니까. 그래서 피곤하고 지겹지만 나는 오늘도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함께 할 동료들을 찾아서.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