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유산
창작의 압박을 받고 있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지 않는다. 그림을 팔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일부가 된 창작 활동은 나를 끊임없이 내 책상 앞으로 이끈다. “앉으세요. 타자를 치세요. 공책을 열고, 연필을 드세요.” 나는 내 머릿속 생각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손을 움직여, 붓을 놀리고, 종이를 오린다. 홀린 듯이 한 시간 즈음을 보내고 나면, 내 가슴은 휑해진다. 끄집어내었다는 만족감과 비워졌다는 공허함이 함께 느껴진다.


2022년 내 생일 하루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사건은 내가 하도 많이 말하고 다녀서 주변인들이 최소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연도 및 날짜는 기억 못 하더라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 사건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건 인지한다. 2020년 팬데믹부터 꾸준히 쓰고 뉴스레터를 통해 공유하던 에세이를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을 바라보고 활자로 옮긴다는 건 마치 내 손으로 갓 죽인 동물의 창자를 꺼내어 봐야 하는 것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 행위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abc를 적던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그릴 때 곧이곧대로 그렸다. 색은 잘 쓸 줄 몰라서 연필로만 그렸다. 초등학생 때 미술학원을 몇 년간 다녔는데, 그때의 감각을 주섬주섬 찾아내어 선을 긋고 명암을 넣었다. 아마추어치고는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뿌듯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사망 이후 내 창작물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선 하나하나 얌전히 그릴 인내심이 없었다. 내 손은 떨렸고, 빠르게 움직였다. 망치에 맞은 듯 뇌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종이 위 그림의 명확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창작을 통해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을 치유해 나갔다. 스케치북이 한 장 한 장 슬픔, 분노, 죄책감으로 채워질수록, 내 몸속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한동안 나는 이것을 외할머니의 유산으로 여겼다. 그의 별세 덕분에 글을 못 쓰게 되었고, 막다른 길에 부딪혀서 미술을 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외할머니의 유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년 전부터 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트라우마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개인의 삶 안에서 트라우마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찰스 위트필드는 <내면 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상실은 주로 별개로 또한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지만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비통함은 치유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던 예전의 상실들을 소환시킨다.”


내가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하며 가진 의문 중 하나가 ‘왜 내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삼사십 년이 흐른 지금 의식 위로 떠오른 것일까?’였다. 외할머니는 몇 년을 병환과 고독으로 괴로워하시다가 자살 시도를 하셨고, 그 후 요양병원에서 삼 년을 더 고통받으신 후 돌아가셨다. 그의 고통은 나를 위한 희생은 아니었지만, 이는 내가 한평생 떠안고 살아온 트라우마의 치료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용자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
외할머니의 유산
창작의 압박을 받고 있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지 않는다. 그림을 팔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일부가 된 창작 활동은 나를 끊임없이 내 책상 앞으로 이끈다. “앉으세요. 타자를 치세요. 공책을 열고, 연필을 드세요.” 나는 내 머릿속 생각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손을 움직여, 붓을 놀리고, 종이를 오린다. 홀린 듯이 한 시간 즈음을 보내고 나면, 내 가슴은 휑해진다. 끄집어내었다는 만족감과 비워졌다는 공허함이 함께 느껴진다.
2022년 내 생일 하루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사건은 내가 하도 많이 말하고 다녀서 주변인들이 최소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연도 및 날짜는 기억 못 하더라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 사건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건 인지한다. 2020년 팬데믹부터 꾸준히 쓰고 뉴스레터를 통해 공유하던 에세이를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을 바라보고 활자로 옮긴다는 건 마치 내 손으로 갓 죽인 동물의 창자를 꺼내어 봐야 하는 것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 행위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abc를 적던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그릴 때 곧이곧대로 그렸다. 색은 잘 쓸 줄 몰라서 연필로만 그렸다. 초등학생 때 미술학원을 몇 년간 다녔는데, 그때의 감각을 주섬주섬 찾아내어 선을 긋고 명암을 넣었다. 아마추어치고는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뿌듯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사망 이후 내 창작물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선 하나하나 얌전히 그릴 인내심이 없었다. 내 손은 떨렸고, 빠르게 움직였다. 망치에 맞은 듯 뇌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종이 위 그림의 명확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창작을 통해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을 치유해 나갔다. 스케치북이 한 장 한 장 슬픔, 분노, 죄책감으로 채워질수록, 내 몸속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한동안 나는 이것을 외할머니의 유산으로 여겼다. 그의 별세 덕분에 글을 못 쓰게 되었고, 막다른 길에 부딪혀서 미술을 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외할머니의 유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2년 전부터 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작년에는 트라우마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개인의 삶 안에서 트라우마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찰스 위트필드는 <내면 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상실은 주로 별개로 또한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지만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비통함은 치유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던 예전의 상실들을 소환시킨다.”
내가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하며 가진 의문 중 하나가 ‘왜 내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삼사십 년이 흐른 지금 의식 위로 떠오른 것일까?’였다. 외할머니는 몇 년을 병환과 고독으로 괴로워하시다가 자살 시도를 하셨고, 그 후 요양병원에서 삼 년을 더 고통받으신 후 돌아가셨다. 그의 고통은 나를 위한 희생은 아니었지만, 이는 내가 한평생 떠안고 살아온 트라우마의 치료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