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에이블리즘*
* Ablism: 정상신체 중심주의
나는 작년 가을부터 달리기 훈련을 했다. 몇 년 전에 한두 번 뛰다가 관두었고, 10년 전쯤에는 몇 달간 뛰다가 그만두었다. 햄스트링 부상이 원인이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시도했을 때에는 햄스트링을 다치기도 전에 무릎이 아파서 관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했다. 걷기부터 시작한 거다. 런데이라는 한국 어플을 깔고, 가장 쉬운 ‘초보 걷기’ 코스부터 시작했다. 그 2주짜리 프로그램을 천천히 한다고 여러 번 반복하며 한 달 이상 걷기만 했다. 아니,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그 후 초보 달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10월이 되자, 아침저녁이 너무 어둡고 추워져서 러닝머신을 쓰려고 처음으로 헬스장 멤버십도 끊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일주일에 세네 번씩 짐에 가서 프로그램 속 코치의 가이드를 들으며 뛰었다. 나중에는 30-40분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정도로 늘었고, 그만큼 내 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저녁 수업을 가기 전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짐에 갔다. 10분만 뛰려는 생각이었다. 가볍게 뛰는 거라 따로 준비 운동은 하지 않았다. 보통 가벼운 조깅으로 웜업을 하기도 하니까. 2월이었고, 밖은 매우 추웠다. 주차장은 차가 있는 부분 빼고는 눈들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추운 날씨로 굳은 근육이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 뛰어서일 것이다. 햄스트링에 통증이 왔다. 그렇게 부상을 당하고 다시 달리지 못했다.
예전에 겪어 본 부상이기에 쉽게 생각했다. ‘쉬면 낫겠지.’ 나름 유튜브에서 자료도 찾아보았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햄스트링 부상은 절대 며칠 만에 낫지 않고, 몇 달 혹은 1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걷고 움직일 때 햄스트링을 항상 쓰기 때문이란다. 그 당시에는 부상이 그렇게 오래갈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6월인 지금, 내 몸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몸의 부상은 움직일 때만 아플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앉아있을 때 아픈 부상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 앉아 있으면, 특히 딱딱한 곳에, 엉덩이뼈와 햄스트링에 압박이 가서 아프다. 자주 자세를 바꿔야 하고, 식당 같은 데 갈 때도 작은 방석이나, 담요를 말아 가지고 가서 깔고 앉았다.
설상가상으로 그저께 밤에는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한참을 고통에 시달리며 주물러야 했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건만 아직도 종아리는 딴딴하게 배긴다. 걸을 때 뒤뚱뒤뚱 걷게 되어서 속으로 ‘이러다 평생 병신으로 사는 거 아니야?’하고 걱정을 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걱정인가? 아예 못 걷는 것도 아니고, 조금 못 걷는다고 병신이라니. 내 안에 얼마나 장애인 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 너무 빤히 보여서 뜨악했다. 이번 주, 다음 주, 두 주에 걸쳐서 동네 도서관에서 미술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 신청서를 살펴보는데 두 번째 주에 네 사람이 다 같은 이메일 주소로 신청을 했다. 그 이메일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하다가 그 사람이 신체적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는 단체의 디렉터 카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몇 개의 질문을 작성해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워크숍에 그들이 참가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미리 알고 조정을 하려는 의도였다.
금요일에 도서관에 들려 담당사서 알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카라에게 보낸 이메일을 인쇄해 놓았었다. (이메일에 그를 참조했었다.) 그는 내가 카라에게 물은 몇몇 질문들을 그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며 염려했다. ‘아니, 어느 질문이?’ 그는 다음의 질문들을 가리켰다.
90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나요? 아니면, 얼마나 자주 휴식을 필요로 할까요?
보통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되나요?
아크릴 물감과 크레파스를 쓴 경험이 있나요? 특정 감각 (터치, 냄새, 소리, 빛, 등)에 예민함을 보이나요?
알렌은 내가 이 질문들을 더 부드럽게 표현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왜 이 질문들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지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사람들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른 요구들을 가지고 있고, 이를 적절히 수용하려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에 대한 질문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알렌과 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카라가 답변을 하면 그에게 알려주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짝꿍에게 알렌과의 대화에 대해 말하며 뒤늦게 화가 많이 났다. 나에게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라는 그의 반복적인 요구가 마치 장애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피해야 한다는 설교처럼 들렸다. 또한 내가 참가자들을 최대한 잘 수용하고자 애써 작성해서 보낸 이메일에 대해 알렌이 좋은 말은 한마디도 안 하, 질문 하나하나를 따지고 드는 것이 내 언어를 검열하듯이 느껴졌다.
시스 백인 남성이 내게 그런 태도를 갖는 건 놀랍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가장 화가 난 부분은 내 노력을 몰라준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부족하고 앞으로도 배울 게 많다는 걸 나 자신도 잘 안다. 그런 나에게 내가 나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 부분을 잘못했다고 꼬집힌걸 속으로 창피하게 느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 나는 여전히 부족한 건가?’하고 말이다.
알렌이 나에게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아침 내 몸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맞아. 나는 한참 모자라는구나.' 단기부상으로 인해 걷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의 몸에게 나는 가차 없이 모진 말을 내뱉었다. 우리 몸과 마음이 항상 100프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우리의 몸과 뇌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다치거나 고장 나기 쉽다. 그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여기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심신의 실적과 성과를 잣대로 누가 더 낫고, 누가 덜 나은지 비교하고 비난하며 좌절하고 깔보게 된다.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
내 마음속 에이블리즘*
* Ablism: 정상신체 중심주의
나는 작년 가을부터 달리기 훈련을 했다. 몇 년 전에 한두 번 뛰다가 관두었고, 10년 전쯤에는 몇 달간 뛰다가 그만두었다. 햄스트링 부상이 원인이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시도했을 때에는 햄스트링을 다치기도 전에 무릎이 아파서 관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했다. 걷기부터 시작한 거다. 런데이라는 한국 어플을 깔고, 가장 쉬운 ‘초보 걷기’ 코스부터 시작했다. 그 2주짜리 프로그램을 천천히 한다고 여러 번 반복하며 한 달 이상 걷기만 했다. 아니,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그 후 초보 달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10월이 되자, 아침저녁이 너무 어둡고 추워져서 러닝머신을 쓰려고 처음으로 헬스장 멤버십도 끊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일주일에 세네 번씩 짐에 가서 프로그램 속 코치의 가이드를 들으며 뛰었다. 나중에는 30-40분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정도로 늘었고, 그만큼 내 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저녁 수업을 가기 전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짐에 갔다. 10분만 뛰려는 생각이었다. 가볍게 뛰는 거라 따로 준비 운동은 하지 않았다. 보통 가벼운 조깅으로 웜업을 하기도 하니까. 2월이었고, 밖은 매우 추웠다. 주차장은 차가 있는 부분 빼고는 눈들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추운 날씨로 굳은 근육이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 뛰어서일 것이다. 햄스트링에 통증이 왔다. 그렇게 부상을 당하고 다시 달리지 못했다.
예전에 겪어 본 부상이기에 쉽게 생각했다. ‘쉬면 낫겠지.’ 나름 유튜브에서 자료도 찾아보았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햄스트링 부상은 절대 며칠 만에 낫지 않고, 몇 달 혹은 1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걷고 움직일 때 햄스트링을 항상 쓰기 때문이란다. 그 당시에는 부상이 그렇게 오래갈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6월인 지금, 내 몸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몸의 부상은 움직일 때만 아플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앉아있을 때 아픈 부상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 앉아 있으면, 특히 딱딱한 곳에, 엉덩이뼈와 햄스트링에 압박이 가서 아프다. 자주 자세를 바꿔야 하고, 식당 같은 데 갈 때도 작은 방석이나, 담요를 말아 가지고 가서 깔고 앉았다.
설상가상으로 그저께 밤에는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한참을 고통에 시달리며 주물러야 했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건만 아직도 종아리는 딴딴하게 배긴다. 걸을 때 뒤뚱뒤뚱 걷게 되어서 속으로 ‘이러다 평생 병신으로 사는 거 아니야?’하고 걱정을 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걱정인가? 아예 못 걷는 것도 아니고, 조금 못 걷는다고 병신이라니. 내 안에 얼마나 장애인 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 너무 빤히 보여서 뜨악했다. 이번 주, 다음 주, 두 주에 걸쳐서 동네 도서관에서 미술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 신청서를 살펴보는데 두 번째 주에 네 사람이 다 같은 이메일 주소로 신청을 했다. 그 이메일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하다가 그 사람이 신체적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는 단체의 디렉터 카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몇 개의 질문을 작성해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워크숍에 그들이 참가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미리 알고 조정을 하려는 의도였다.
금요일에 도서관에 들려 담당사서 알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카라에게 보낸 이메일을 인쇄해 놓았었다. (이메일에 그를 참조했었다.) 그는 내가 카라에게 물은 몇몇 질문들을 그가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며 염려했다. ‘아니, 어느 질문이?’ 그는 다음의 질문들을 가리켰다.
90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나요? 아니면, 얼마나 자주 휴식을 필요로 할까요?
보통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분이나 되나요?
아크릴 물감과 크레파스를 쓴 경험이 있나요? 특정 감각 (터치, 냄새, 소리, 빛, 등)에 예민함을 보이나요?
알렌은 내가 이 질문들을 더 부드럽게 표현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왜 이 질문들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지 그에게 물었지만, 그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사람들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른 요구들을 가지고 있고, 이를 적절히 수용하려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에 대한 질문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알렌과 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카라가 답변을 하면 그에게 알려주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짝꿍에게 알렌과의 대화에 대해 말하며 뒤늦게 화가 많이 났다. 나에게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라는 그의 반복적인 요구가 마치 장애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피해야 한다는 설교처럼 들렸다. 또한 내가 참가자들을 최대한 잘 수용하고자 애써 작성해서 보낸 이메일에 대해 알렌이 좋은 말은 한마디도 안 하, 질문 하나하나를 따지고 드는 것이 내 언어를 검열하듯이 느껴졌다.
시스 백인 남성이 내게 그런 태도를 갖는 건 놀랍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가장 화가 난 부분은 내 노력을 몰라준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부족하고 앞으로도 배울 게 많다는 걸 나 자신도 잘 안다. 그런 나에게 내가 나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 부분을 잘못했다고 꼬집힌걸 속으로 창피하게 느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 나는 여전히 부족한 건가?’하고 말이다.
알렌이 나에게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아침 내 몸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맞아. 나는 한참 모자라는구나.' 단기부상으로 인해 걷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의 몸에게 나는 가차 없이 모진 말을 내뱉었다. 우리 몸과 마음이 항상 100프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우리의 몸과 뇌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다치거나 고장 나기 쉽다. 그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여기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심신의 실적과 성과를 잣대로 누가 더 낫고, 누가 덜 나은지 비교하고 비난하며 좌절하고 깔보게 된다.
용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아플 때도 글을 씁니다. 사람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며 울고, 소리 내어 나누며 눈물을 닦습니다. 여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마조마 끌어안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이제는 꽤나 세 보이기도 합니다.
인스타 @KoreanLinda
이메일 LindaParkNYC@gmail.com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 멤버 용자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