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는 아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아기랑 처음으로 함께하는 비행기 여행. 평소라면 좋아하는 책을 펼쳐 예쁜 문장들에 젖어들거나 창밖 구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텐데, 아기가 조금이라도 낑낑거릴까 비행 내내 품 안의 아기만 어르고 달랬다. ‘6개월짜리 애기를 데리고 도대체 왜 해외여행을 가는거냐’는 커뮤니티 글들과, 아기와 함께 비행기에 탄 어느 커플이 주변 승객들에게 혹시나 모를 불편에 양해를 구하는 쪽지와 함께 간식들을 나눠줬다는 일화가 계속 생각났다. 아기를 키우는 건 내가 ‘맘충’인지 아닌지를 매 순간 검열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아기가 두 시간을 내리 푹 잤다. 그 덕에 배우자와 영화도 보고 석양이 지는 하늘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품 안의 아이를 달래다 문득, 나도 아이였던 시절의 비행이 떠오른다. 나는 울지 않고 의젓하게 비행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방학이 되어 아빠를 만나러 갈 시기가 오면 종종 비행기를 탔다. 항공사에는 공항까지만 보호자가 동행하면 되고, 나머지 수속은 승무원이 맡아주는 서비스가 있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후, 방학이면 나와 동생은 비행기에 태워 서로에게 보내지곤 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겨우 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된 동생 손을 잡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을 따라 얌전히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면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탑승을 기다리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봤다.
‘쟤네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데도 왜 저렇게 떼를 쓸까. 내가 쟤네라면 정말 착하게 굴 텐데.’
질투가 나는 마음조차 버거워서 우월감으로 눌렀다.
‘나는 얌전하고 의젓해. 아빠 집에 갈 때면 비행기를 타.’
산동네 옥탑방에 사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자녀치고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호사였다. 아빠를 만나러 가는 일은 내 일상에는 없는 부푼 솜사탕을 먹는 것 같았다. 그 솜사탕은 마냥 달지도 않았다. 이런 달콤한 호사를 누리는데 엄마 손은 잡을 수 없다는 게 쓰디 썼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꾸욱 참는다. 좋아하는 걸 달게 누리면서도 한구석은 아프고 쓰린 마음. 그게 어릴 때부터 가져온 관성이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기쁘고 불안하고 슬퍼. 그런데 그게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야.
아빠네 집에 갈 때면 아빠는 우리에게 새 옷을 사줬다. 반년 만에 아빠를 보면, 아빠는 나랑 동생을 보고 꼬질꼬질하다고 했다. 공부방에서 물려입거나 작아진 옷들이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우리를 차에 태우고, 엄마랑은 평소에 가지 못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다가, 태화강 근처에 있는 세이브존으로 가서 새 옷을 사주는 게 그와의 루틴이었다.
나 역시 그를 보고 생각했다.
‘꼬질꼬질해.’
그의 차를 타면 다 무너져 가는 구축 원룸 아파트 단지에서 나는 덜 마른 수건 냄새가 딸려 왔다. 아빠라고 아웃백이나 빕스를 가는 형편은 아니었다. 세상의 그늘을 다 짊어진듯한 얼굴을 하고, 꿉꿉한 습기를 머금은 니트 조끼를 입은 채, 우리를 아울렛에 데려가 이 옷 저 옷을 대어 보는 그의 어색한 손길에 죄책감과 연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었다. 그도 나를,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 만큼 사랑해 주었으면. 그건 다 자란 어른이 된 지금도 깊이 바라는 일이니까. 아울렛에서 어색한 표정과 손길로 우리에게 옷을 골라 주던 그의 모습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 멋대로 붙여 버렸다.
나는 세이브존에서의 아빠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빕스에서의 아빠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경주 해수욕장에 가서 우리를 튜브에 태워 줬던 아빠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아빠는 어렸던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목마름을 해소하려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계속 계속 찾아낸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닐지 의심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면 되는 것이니까.
나는 귀한 딸, 사랑받은 딸.
그렇게 여긴다.
비행기를 타면 세상이 아주 넓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게 늘 좋았다.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고, 원한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 치고는, 되게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선택들이 옵션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좋았다. 삶의 모양은 원한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며 버림받은 기분에 젖곤 했던 어린 시절과 이별한 것도 내 선택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여러 개니까 말이다.
비행기 창밖으로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을 본다. 품 안에는 곤히 잠든 아기가 있고, 옆에선 여독에 지친 배우자가 잠깐 눈을 붙인다. 이제는 어디론가 보내지는 아이가 아니고,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과 함께 비행을 한다. 누구와도 헤어지지 않고, 우리는 같은 곳으로 함께 돌아간다.
뭉치
평화와 인권을 말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봉천동 달동네에 삶의 뿌리를 두고, 그곳에서 익힌 상상력으로 세상을 더듬고 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에서 쓰고 나눈 글입니다.
비행기를 타는 아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아기랑 처음으로 함께하는 비행기 여행. 평소라면 좋아하는 책을 펼쳐 예쁜 문장들에 젖어들거나 창밖 구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텐데, 아기가 조금이라도 낑낑거릴까 비행 내내 품 안의 아기만 어르고 달랬다. ‘6개월짜리 애기를 데리고 도대체 왜 해외여행을 가는거냐’는 커뮤니티 글들과, 아기와 함께 비행기에 탄 어느 커플이 주변 승객들에게 혹시나 모를 불편에 양해를 구하는 쪽지와 함께 간식들을 나눠줬다는 일화가 계속 생각났다. 아기를 키우는 건 내가 ‘맘충’인지 아닌지를 매 순간 검열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아기가 두 시간을 내리 푹 잤다. 그 덕에 배우자와 영화도 보고 석양이 지는 하늘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품 안의 아이를 달래다 문득, 나도 아이였던 시절의 비행이 떠오른다. 나는 울지 않고 의젓하게 비행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방학이 되어 아빠를 만나러 갈 시기가 오면 종종 비행기를 탔다. 항공사에는 공항까지만 보호자가 동행하면 되고, 나머지 수속은 승무원이 맡아주는 서비스가 있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후, 방학이면 나와 동생은 비행기에 태워 서로에게 보내지곤 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겨우 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된 동생 손을 잡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을 따라 얌전히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면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탑승을 기다리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봤다.
‘쟤네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데도 왜 저렇게 떼를 쓸까. 내가 쟤네라면 정말 착하게 굴 텐데.’
질투가 나는 마음조차 버거워서 우월감으로 눌렀다.
‘나는 얌전하고 의젓해. 아빠 집에 갈 때면 비행기를 타.’
산동네 옥탑방에 사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자녀치고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호사였다. 아빠를 만나러 가는 일은 내 일상에는 없는 부푼 솜사탕을 먹는 것 같았다. 그 솜사탕은 마냥 달지도 않았다. 이런 달콤한 호사를 누리는데 엄마 손은 잡을 수 없다는 게 쓰디 썼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꾸욱 참는다. 좋아하는 걸 달게 누리면서도 한구석은 아프고 쓰린 마음. 그게 어릴 때부터 가져온 관성이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기쁘고 불안하고 슬퍼. 그런데 그게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야.
아빠네 집에 갈 때면 아빠는 우리에게 새 옷을 사줬다. 반년 만에 아빠를 보면, 아빠는 나랑 동생을 보고 꼬질꼬질하다고 했다. 공부방에서 물려입거나 작아진 옷들이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우리를 차에 태우고, 엄마랑은 평소에 가지 못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다가, 태화강 근처에 있는 세이브존으로 가서 새 옷을 사주는 게 그와의 루틴이었다.
나 역시 그를 보고 생각했다.
‘꼬질꼬질해.’
그의 차를 타면 다 무너져 가는 구축 원룸 아파트 단지에서 나는 덜 마른 수건 냄새가 딸려 왔다. 아빠라고 아웃백이나 빕스를 가는 형편은 아니었다. 세상의 그늘을 다 짊어진듯한 얼굴을 하고, 꿉꿉한 습기를 머금은 니트 조끼를 입은 채, 우리를 아울렛에 데려가 이 옷 저 옷을 대어 보는 그의 어색한 손길에 죄책감과 연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었다. 그도 나를,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 만큼 사랑해 주었으면. 그건 다 자란 어른이 된 지금도 깊이 바라는 일이니까. 아울렛에서 어색한 표정과 손길로 우리에게 옷을 골라 주던 그의 모습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 멋대로 붙여 버렸다.
나는 세이브존에서의 아빠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빕스에서의 아빠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경주 해수욕장에 가서 우리를 튜브에 태워 줬던 아빠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나에게 준다.
아빠는 어렸던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목마름을 해소하려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계속 계속 찾아낸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닐지 의심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면 되는 것이니까.
나는 귀한 딸, 사랑받은 딸.
그렇게 여긴다.
비행기를 타면 세상이 아주 넓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게 늘 좋았다.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고, 원한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 치고는, 되게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선택들이 옵션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좋았다. 삶의 모양은 원한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며 버림받은 기분에 젖곤 했던 어린 시절과 이별한 것도 내 선택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여러 개니까 말이다.
비행기 창밖으로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을 본다. 품 안에는 곤히 잠든 아기가 있고, 옆에선 여독에 지친 배우자가 잠깐 눈을 붙인다. 이제는 어디론가 보내지는 아이가 아니고, 내가 선택한 나의 가족과 함께 비행을 한다. 누구와도 헤어지지 않고, 우리는 같은 곳으로 함께 돌아간다.
뭉치
평화와 인권을 말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봉천동 달동네에 삶의 뿌리를 두고, 그곳에서 익힌 상상력으로 세상을 더듬고 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 신여성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에서 쓰고 나눈 글입니다.